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은 46년간의 적대 관계를 종식시켰으나, 국민적 지지 부족으로 ‘차가운 평화’에 머물렀습니다. 이 글은 국경, 수자원, 예루살렘 성지 등 핵심 쟁점과 조약 이후 30년간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심층 분석합니다. 또한 가자지구 전쟁 이후 악화된 양국 관계의 현주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자원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실용적 협력의 역설적인 측면을 조명합니다.
목차
- 1부: 조약 체결의 배경: 왜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나?
- 2부: 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 요약: 무엇을 합의했나?
- 3부: 요르단 평화과정 주요 쟁점: 물과 땅, 그리고 성지(聖地)
- 4부: 조약 이후 사회·경제 변화: 기대와 다른 30년의 성적표
- 5부: 2024-2026년 현재: 역대 최저 수준의 관계와 실용적 협력의 역설
- 결론: 생존했지만 번영하지 못한 평화, 그리고 미래
- 자주 묻는 질문 (FAQ)
서론: 중동 평화의 변곡점, 그러나 ‘차가운 평화’의 시작
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 요약으로 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1994년 10월 26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후세인 1세 요르단 국왕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평화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이 조약은 46년간 이어져 온 공식적인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이집트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은 아랍 국가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중동에 안정의 초석을 놓았지만,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따뜻하고 진정한 화해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양국 국민 간의 교류나 이해보다는 정부 간의 실용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역사적인 조약의 구체적인 내용과 타결 과정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조약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국의 사회와 경제는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가자지구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2026년 현재, 양국 관계는 어떤 모습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부: 조약 체결의 배경: 왜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적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불신은 깊어졌고, 특히 1967년 ‘6일 전쟁’은 요르단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전쟁으로 요르단은 막대한 경제적 가치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요단강 서안 지구(West Bank)와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양국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중동 정세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마드리드 평화회의와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연이어 타결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의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후세인 국왕은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요르단의 전략적 계산
- 미국과의 관계 개선: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를 지지했던 요르단은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은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 경제 위기 극복: 당시 요르단은 막대한 외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평화 조약 체결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약 7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받고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습니다.
- 팔레스타인 문제: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의 공식 협상 파트너로 부상하자,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직접 대화 채널을 구축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지 관리권 등 자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결국 후세인 국왕은 국가의 생존과 안정을 위해 이스라엘과의 평화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이는 1994년 조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2부: 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 요약: 무엇을 합의했나?
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은 총 30개 조항과 5개의 부속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경, 수자원, 안보, 경제 등 광범위한 분야의 합의를 담고 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분야 | 핵심 합의 내용 |
|---|---|
| 제3조 (국경) | 요르단 강과 야르무크 강을 따라 양국의 국제 국경을 최종적으로 확정했습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바쿠라(Baqura/Naharayim)와 구마르(Ghamr/Zofar) 지역은 요르단의 주권을 인정하되, 이스라엘 농민들이 25년간 해당 지역에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특별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
| 제6조 (수자원) | 세계에서 가장 물이 부족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에서 물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5,000만 입방미터(MCM)의 물을 요르단에 공급하고, 요단강과 야르무크 강의 수자원을 양국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 제9조 (예루살렘) | 조약 제9조 2항에는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내 무슬림 성지(Muslim Holy shrines)에 대한 요르단 하심 왕국의 현재의 특별한 역할을 존중한다”고 명시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공식 문서로 알아크사 모스크를 포함한 이슬람 성지에 대한 요르단 왕가의 종교적 후견인(Custodianship) 지위를 인정한 첫 사례로, 요르단에게는 매우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
| 제4조 (안보) | 양국은 서로의 영토를 이용해 상대방을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도 금지하고, 테러 방지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오랜 군사적 대치를 종식시키는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
| 제7조 (경제) |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경제적 보이콧을 완전히 끝내고, 무역, 관광, 교통,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며 미래의 공동 번영을 약속했습니다. |
이처럼 조약은 양국의 오랜 갈등을 법적으로 마무리하고, 실용적 협력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3부: 요르단 평화과정 주요 쟁점: 물과 땅, 그리고 성지(聖地)
조약 체결 이후 30년의 시간은 합의가 현실에서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물, 땅, 성지 문제는 끊임없이 양국 관계를 시험대에 오르게 한 요르단 평화과정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쟁점 1: 수자원 갈등 – 약속과 현실의 간극
조약에 명시된 물 공급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인구 증가는 요르단의 물 부족을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물 공급은 종종 정치적 ‘밸브’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양국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이스라엘이 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요르단에게 큰 압박이 되었습니다. 2024년 5월, 물 공유 협정이 가까스로 갱신되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갈등을 잠시 미뤄둔 임시방편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쟁점 2: 국경 임대 종료 – 주권 회복과 관계의 균열
2019년, 요르단은 조약에 따라 25년간 이스라엘에 임대했던 바쿠라와 구마르 지역의 임대 계약 갱신을 거부하고 영토를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한 태도와 악화된 여론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요르단으로서는 당연한 주권 행사였지만, 이 사건은 조약이 상징하던 실용적 협력 관계에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쟁점 3: 예루살렘 성지 관리권 – 끝나지 않는 갈등
예루살렘 성지 관리권은 가장 민감한 문제입니다. 조약 9조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극우파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이슬람 성지인 성전산(알아크사) 방문을 강행하고, 이스라엘 경찰이 참배객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요르단은 이를 자국의 특별한 역할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 간주하며 강력히 반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외교적 마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4부: 조약 이후 사회·경제 변화: 기대와 다른 30년의 성적표
평화 조약이 가져올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화합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의 성적표는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조약 이후 사회·경제 변화는 뚜렷한 성과와 깊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경제 분야: 제한된 성공과 깊어지는 의존성
| 성과 (Achievements) | 한계 (Limitations) |
|---|---|
| 미국 원조 증가 및 부채 탕감: 조약 체결 직후, 미국은 약속대로 요르단의 막대한 부채를 탕감해주고 경제 원조를 대폭 늘렸습니다. 이는 요르단 경제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기대에 못 미친 교역량: 양국 간 직접 교역은 예상만큼 활성화되지 않았고, 무역수지는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
| QIZ(적격산업지구) 설립: 1996년 설립된 QIZ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요르단이 이스라엘산 부품을 최소 8% 이상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면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한 제도로, 특히 요르단 섬유 산업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 에너지 의존 심화: 2016년 체결된 이스라엘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 계약은 요르단의 에너지 안보를 이스라엘에 의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계약은 “적의 가스를 수입한다”는 비판과 함께 요르단 내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켰습니다. |

사회 분야: ‘차가운 평화’의 고착화
조약이 가져온 가장 큰 한계는 사회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정부 간의 공식적인 관계와 달리, 국민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 깊게 뿌리내린 반(反)이스라엘 정서: 요르단 인구의 절반 이상(50~60%)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에게 이 조약은 ‘배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 잡았고, 이는 양국 관계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 전무한 민간 교류: 정부 간 안보 및 경제 협력과 달리, 문화, 학술, 스포츠, 시민 단체 등 민간 차원의 교류는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는 양국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을 기회 자체가 없었음을 의미하며, ‘차가운 평화’가 고착화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 미해결된 난민 문제: 조약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과 같은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요르단 내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5부: 2024-2026년 현재: 역대 최저 수준의 관계와 실용적 협력의 역설
2023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이미 위태롭던 양국 관계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2023년 11월, 요르단은 항의의 표시로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고, 텔아비브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며 관계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습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이스라엘을 공개 비판하며 외교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2026년 최신 동향
이러한 긴장 관계는 2026년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책: 2026년 2월,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불법 정착촌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는 정책을 발표하자, 요르단은 이를 “두 국가 해법을 파괴하고 평화의 기회를 없애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 요르단의 징병제 재도입: 최근 요르단 정부가 30여 년 만에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격화와 시리아 내전 등 불안정한 지역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과의 잠재적 갈등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둔 국방력 강화 조치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극심한 외교적 갈등 속에서도 양국의 물밑 협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공유, 국경 지역의 마약 및 무기 밀수 방지를 위한 공조 등 안보 협력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과 에너지 분야의 깊은 상호 의존성 역시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생존했지만 번영하지 못한 평화, 그리고 미래
요르단-이스라엘 1994 조약 요약을 통해 우리는 이 조약이 지난 30년간 양국 간의 또 다른 전면전을 막는 중요한 ‘안전판’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물, 영토, 성지를 둘러싼 요르단 평화과정의 주요 쟁점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졌고, 기대했던 조약 이후 사회·경제 변화는 국민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며 ‘차가운 평화’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현재 양국 관계는 ‘전략적 필요에 의한 불편한 동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날을 세우면서도, 안보와 자원의 필요 때문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정부 간의 실용적 관계를 넘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따뜻한 평화’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정부 간의 평화 조약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진정한 평화로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1994년 조약에도 불구하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관계가 ‘차가운 평화’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정부 간의 실용적 필요에 의해 체결되었지만, 요르단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의 반발과 지속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해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문화, 학술 등 민간 교류가 거의 없어 양국 국민 간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Q: 요르단 평화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A: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르단 강을 기준으로 한 국경 확정 문제. 둘째, 세계적인 물 부족 지역에서의 수자원 분배 문제. 셋째, 이슬람 성지에 대한 요르단 왕가의 후견인 지위를 인정한 예루살렘 성지 관리권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는 조약 이후에도 계속해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Q: 현재 가자지구 사태가 요르단-이스라엘 관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인가요?
A: 2023년 시작된 가자지구 사태는 양국 관계를 역대 최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요르단은 항의의 표시로 주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하는 등 외교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한 안보 협력이나 물, 에너지 분야의 상호 의존성 때문에 물밑에서의 실용적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